23.02.02
한국일보 인터뷰
“주부만큼 멀티태스킹 잘하는 사람 없을 걸요”
육아 때문에 경력이 단절된 여성들로만 구성된 회사가 있다. ‘특별한 재능을 가진 아주머니들’이라는 뜻의 그래픽 디자인 업체 ‘별주머니’다.
회사를 세운 박슬아 대표 역시 두 아이를 키우느라 경력이 단절된 여성이었다. 오랜 경력과 뛰어난 업무 능력을 살리면 풀타임으로 일하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좋은 결과물을 낼 수 있다는 생각에 친구들과 함께 2013년 회사를 차렸다.
박 대표는 16일 서울 마포구 노고산동 사무실에서 “아이를 키우면서 쌓은 친화력, 배려, 공감 능력 등이 업무에 엄청난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대학에서 디자인을 전공한 박 대표는 기자로 사회생활을 시작해 홍보와 마케팅을 하다 10여년 전 출산과 함께 직장을 그만뒀다. “대기업이나 공공기관에 다니던 것도 아니었으니 육아휴직은 엄두도 못 냈죠. 파트타임으로 일할 수 있는 곳을 찾아보기도 했는데 제 전문분야를 살릴 수 있는 데는 없더군요. 그러던 중 남편의 일 때문에 중국에서 1년간 머물게 됐는데 그때 지역축제 홍보를 파트타임으로 맡게 됐어요. 오랜만에 일을 다시 하니 신이 났죠. 이렇게 일해도 아무 문제 없이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도 생겼어요.”
박 대표는 남편의 정보통신업계 지인들을 만나면서 조금씩 가능성을 찾아 나갔다. 그들 중 한 명이 맡긴 일을 해낸 뒤 확신을 얻었다. “고학력 전문직 여성이었다가 일을 그만둔 엄마들을 보면 안타까웠어요. 재능이 아깝잖아요. 제가 전공인 디자인은 썩 잘 못 했지만 기획하는 일은 잘했거든요. 디자인 업무는 집에서도 얼마든지 할 수 있으니 디자이너로 일했던 대학 선후배들을 모아서 회사를 시작했죠.”
별주머니에서 일하는 프리랜서는 대부분 30대 중반에서 40대 초반의 주부들이다. 프로젝트 단위로 일을 나눠서 하는데, 경력을 이어갈 수도 있고 원하는 만큼만 일할 수 있어 만족도가 높다고 한다. 회사와 프리랜서의 관계도 갑과 을이 아니라 서로 존중하는 파트너이다. 박 대표는 “필요할 땐 직접 만나기도 하지만 온라인으로 소통하면서 일을 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며 “의뢰 업체도 적은 비용으로 만족스러운 결과물을 얻을 수 있어 흡족해한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육아와 가사의 경험이 업무에 적잖은 도움이 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주부만큼 멀티태스킹에 능한 사람은 없을 겁니다. 커뮤니케이션 능력도 뛰어나죠. 저만 해도 아이를 키우고 나서 타인에 대해 훨씬 너그러워졌고 친화력이 좋아졌어요. 아이들 요구를 다 맞춰주며 살다 보니 고객이 원하는 대로 맞추는 건 그리 어렵지 않더군요.”
박 대표는 함께 일하는 파트너들이 계속 별주머니에서 일하는 것을 바라지는 않는다고 했다. 별주머니가 경력의 공백을 잇는 다리 역할을 했으면 하는 바람이 크기 때문이다. 그는 “경력 단절 여성이 많아지는 건 사회적으로도 손실”이라며 “별주머니 같은 회사가 더욱 많아져서 경력 단절 여성이 파트타임으로 일하며 경력을 이을 기회가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글 고경석 기자
kave@hankookilbo.com